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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saw

시간의 빛깔을 한 몽상 지난 비참함을 이렇게 고백하면서도 나는 영원히 그대 곁으로 다시 다가간다. 이것이 내가 만들어 낸 마지막 환상이므로, 하여 나는 언제나 불행하다. 더보기
앤드루 산텔라 『미루기의 천재들』 아포리즘은 리히텐베르크에게 잘 맞았다. 아포리즘은 미루는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글쓰기 형태다. 더욱 정교하게 다듬거나 발전시키거나 입증할 필요 없이 갑자기 떠오른 성찰을 그대로 표현하면 되기 때문이다. 격언 작가에게 있어 말을 정교하게 다듬는 작업은 모든 걸 망칠 뿐이다. 리히텐베르크만큼이나 금언을 많이 남긴 비트겐슈타인은 논거는 통찰의 아름다움을 버려놓을 뿐이라고 했다. 증거로 통찰을 뒷받침하려는 건 흙 묻은 손으로 꽃을 더럽히는 것과 같다. 이게 바로 비트겐슈타인이 활용한 이미지였다. 내버려두는 게 더 낫다. 리히텐베르크는 열심히 일했지만 절대로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내 생각에는 그는 성취 자체를 싫어했다기보다는 특정 방식으로 이룬 성취만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지적.. 더보기
앤드루 산텔라 『미루기의 천재들』 연구자들은 미루는 행동을 가리켜 충동의 한 종류일 뿐이라고 말한다. 욕구와 욕망을 조절하지 못한 결과라는 얘기다. 이게 사실이라면, 햄릿의 망설임은 그가 폴로니어스를 죽일 때 보여주었던 성급함과 함께 동전의 양면을 이룰 뿐이다. 하지만 다른 설명도 가능하다. 햄릿이 왕을 죽이기 전에 주저한 이유를 수 세기 동안 분석하고 논의해온 학자들에겐 미안하지만, 사실 애초에 이게 정말 그렇게 설명이 필요한 일인가? 햄릿이 삼촌 죽이기를 주저한 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만약 그가 쏜살같이 달려가 아무 거리낌 없이 삼촌을 죽였다면 그게 훨씬 이상하고 충격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햄릿에게 '액팅'이란(가짜 모습을 꾸며 상대를 속인다는 의미에서건, 어려운 결정을 이제는 끝내겠다고 결심한다는 의미에서건) 의심스러운 것이.. 더보기
김선우 『댄스, 푸른푸른』 사실 나는 그간 통용되어 온 '청소년시'라는 명칭에 대해, 그리고 청소년시집이 따로 제작되는 현상에 대해 얼마간 갸우뚱했던 사람이다. 청소년 독자를 위한 산문 장르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십 대 연령층과 소통하기 좋은 산문의 결이라는 게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영상 매체에 밀려 나날이 줄어 가는 청소년기의 독서 경험을 북돋울 응원을 할 수 있으려면 다양한 읽을거리가 더 풍성히 창작되어야 한다. 오래전에 '어른을 위한 동화'로 썼던 『바리공주』를 청소년을 위한 소설 『희망을 부르는 소녀 바리』로 개작해 출간했던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문제는 시다. '1+1=∞'를 지향하는 시 장르의 특수성은 특정 연령대를 독자층으로 국한하는 창작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구성된 문장 너머, 감.. 더보기